병원 근처에 평양면옥이라는 유명한 냉면집이 있다.
평양 냉면은 먹어온지가 어언 4년차다.
레지던트 1년차때 의국등산 후에 필동면옥이란 곳에서 처음 평양 냉면을 먹었는데
"이런 시댕! 한참 클 때라 배고파 디지겠구만 이따위 니맛도 내맛도 없는 걸 먹이나!"하며 의국장에게 있는 힘껏 마음속으로 항의했었다.
그 후로도 제발로 간 적은 없고 1년에 한 두 번 꼭 가야하는 행사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가서 먹고 오는게 다였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쯤에 마치 도를 깨치듯이 '이..이게 뭐야..이..이런 맛이 있었단 말인가'하며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출근 도장 찍어가면서 가고 있다.
병원에서 10분거리라는게 너무 햄볶하다.
나는 혼자서도 자주 간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다.
내가 왕따라는 말이 아니라...잠깐 눈물 좀 닦고..흑..ㅠㅜ
사실 나도 이 맛을 깨닫기까지 한참이 걸렸듯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우리 세대가 단 번에 맛을 느끼기는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친구들을 데려가면 면을 한 입 베어물며 치켜뜬 눈빛에서 '내게 이걸 왜 먹이는데'하는 원망을 느끼며 두 번 같이 가자고 말하기 힘들다.
의국 후배들에겐 '제가 뭘 잘못했는지 이러지말고 그냥 말로 해주세요ㅜㅠ'라는 느낌을 받는달까?
평양면옥의 냉면맛이란 무미무취에 가깝다.
우리 미각을 함차게 공격하는 그런 맛을 기대하며 있는 힘껏 맛보겠다는 태도로 먹으면
냉면은 다먹었는데 도대체 그 유명하다는 적들의 공격은 언제인가요다.
TV 유명맛집 프로그램이나 맛집 블로그를 때문에 '슴슴하다'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던데 방금 네이버사전에 찾아보니 ''심심하다‘(음식맛이 조금 싱겁다)의 잘못된 표기라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사전이 좀 잘못 된 듯하다.
슴슴하다라는 맛은 바로 이런 평양냉면의 니맛도 내맛도 없는 듯하면서 입안을 은은하게 가득 채우는 美香이 아닐까한다..(이게 뭐야..무서워..ㅠㅜ)
참으로 알게되면 '아..이런 맛이 있었단 말인가..'하며 감탄하게 되는 느낌이라 하겠다.
냉면 마니아 사이에서는 평양면옥말고도 우래옥, 봉피양, 을지면옥도 유명하다는데 난 가까운 평양면옥만 다닌다.
이 냉면 마니아들은 이북식 냉면은 가위로 끊어먹으면 육수에 들어갔다 나온 가위의 쇠맛때문에 맛을 버린다는데 지랄 옆차기 하고 앉았다싶다.
작년에 모 카오디오 동호회에 나갔을때 회원 한명이 케이블 팁을 안경닦는 천으로 싹싹 닦아 꼽고 음악을 틀고는 "이제 좀 낫네"하길래 속으로 '저놈 귓구녕을 삭삭 닦으면 감동받아 디지겠네'하던 게 오버랩된다..
평양냉면은 메밀이 주성분이라 끊어먹는데 별 부담이 없다.
그러니 쫀득쫀득한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냉면처럼 가위질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끊어먹는 순간에 확 들이닥치는 메밀과 육수의 조화된 구수한 맛이 일품인지라 굳이 가위질할 필요는 없으리라..

내가 즐기는 냉면 곱배기다.
아이퐁으로 찍어서 구리구리하니라.
바로 옆의 면수도 구수하니라.
여기다 식초 약간, 겨자 약간, 고추가루 약간 뿌린다.
난 계란과 제육, 편육, 오이, 무우는 다 건져낸다.
오직 면과 육수로만 즐긴다.
식초와 겨자와 고추가루의 비율은 남자한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쿠..쿨럭..
대략 탁 한 번 뿌린다고나할까..
은은한 맛을 강조할 수 있는 정도로..
맛을 모르겠거든 억지로 드시지마시고 만두와 제육에 소주도 괜찮으니 그걸 드시라..
세월도 긴데 여기 오시는 어르신들처럼 천천히 냉면을 즐기실 수 있는 날이 있지싶다...